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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추사박물관을 다녀와서

by Jay Jang 2025. 8. 31.

  과천에서 양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추사박물관을 다녀왔다. 추사 김정희는 고조 할아비지가 임금의 사위인 부마(옹주의 남편)를 지낸 집안이었다.

 

1. 추사박물관

 

  추사박물관은 2층에서 시작해 1층, 지하로 이어진다. 2층에 올라가면 투명한 유리창 맞은편 벽에 그려진 추사의 글과 그림에 놀란다. 박물관에는 추사의 그림과 글씨, 초상화, 붓과 벼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간에 추사를 소개하는 영상 화면도 있다.

 

 지하 1층에는 세한도 등을 1인당 한 장씩 탁본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굿즈를 판다.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 구입하기 좋다. 

 

 추사가 말년을 보낸 과천 집(과지초당)은 박물관 밖에 있는데, 추사의 아버지가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지낼 때 별장이었던 곳이다. 

 

과지초당
과지초당

 

2. 추사가 마음을 담아 그림 '세한도'

 

세한도
세한도

 

 추사는 1844년 여름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 

 

 세한은 논어 자한편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는 데서 나왔다. 시련이 닥쳐야 지조 있는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인용됩니다. 

 

 이상적은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가 있을 때 중국 서적을 보내주는 등  추사에게 성심을 다한 역관 제자이다. 그 변치 않은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추사가 이를 그려준 것이다. 

 

 세한도는 여백을 살린 간명한 구도와 메마른 붓질로 세한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뒷쪽의 화기(畵記)에 굳센 필치로 사연을 남겼다. 그 뒤 이상적은 이를 중국으로 가져가 청나라 인사 16명의 발문을 받아 왔다. 

 

추사가 쓴 과천 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

 

 이 글은 추사는 71세에 과천에서 쓴 글이다.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다." 

과천 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
과천 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

 

 

3. 철종실록의 김정희 기록

 

추사 김정희 초상화
추사 김정희 초상화

 

 참판을 지낸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이 투철하여 여러 책을 두루 읽었고, 금석문과 역사에 통달했으며, 초서, 해서,  전서, 예서에 참다운 경지를 신기하게 깨달았다. 

 

 때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잘 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비판할 수 없었으며, 그의 아우 김명희와 더불어 서로 어울리는 악기처럼 서로 화목하여 당세의 대가가 되었다. 

 

 젊어서부터 영특함을 드날렸으나 중도에 가화를 당해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유배를 가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혹은 세상의 쓰임을 당하고 세상의 버림을 받아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했으나 세상에서 혹 그를 송나라 소동파에 견주었다.

 

 - 철종실록 7년 10월 10일